냥줍을 시로 남긴 고려의 대문인 - 고양이 인문학 : 묘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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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인문학​​​​​​​​​​​​

한 이야기

글 | 황의웅 (크리에이터, www.miyaclub.com)



냥줍을 시로 남긴 고려의 대문인


‘냥줍’은 우연히 만난 길냥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 행위를 뜻한다고 한다. 오늘날 애묘 시대에 줄임말 유행이 빚어낸 신조어라 하겠다.


그러나 그 행위는 고양이와 인간의 교류가 시작된 이래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있었으리라.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대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이규보라 하면 무지막지한 무인들이 나라를 지배하던 그 서슬 퍼런 시대에 붓 하나로 벼슬에 올라 몽골군의 침략도 막아낸 인물이 아닌가. 그만큼 그의 글은 칼보다 강한 힘이 품고 있었다. 우리에겐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장편 서사시 <동명왕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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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규보가 냥줍에 관한 귀여운(?) 시를 지은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10권에 그 시가 나온다. 제목은 검은 고양이 새끼를 얻었다는 의미의 ‘득흑묘아(得黑猫兒)’. 여기서 득묘(得猫)가 바로 냥줍의 한자어에 해당된다.


시 내용을 보면, 냥줍한 새끼 고양이는 푸른빛이 도는 부슬부슬 털에 동글동글한 짙푸른 눈빛을 갖고 있었다. 생김새는 범 새끼와 비슷했는데, 그래서였는지 우는 소리에 개도 질겁했단다. 이후 붉은 실로 목줄을 만들어 매고 참새를 잡아 먹이로 주니 발톱을 세워 달려들었다. 그렇게 고양이를 길들였다. 


이규보는 이런 새끼 고양이를 보며 중년까지 고양이를 기르지 않아 쥐들에게 피해를 당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냥줍해 고양이를 집에 들인 뒤로는 쥐들이 날뛰지 못하고 양식까지 보전한다고 좋아한다. 


한편 <동국이상국집> 8권에선 나태한 고양이를 꾸짖는 ‘책묘(責猫)’라는 시도 남겼다. 정황 상 냥줍한 고양이를 두고 쓴 시 같다. 그는 시에서 고양이가 자신이 먹을 고기를 훔쳐 배를 채우고 이불 속에 들어와 그르릉 대기만 한다고 타박한다. 또 밤낮으로 집안을 마구 돌아다니는 쥐들을 잡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한 소리 한다.


그러나 시를 통해 느껴지는 이규보의 고양이에 대한 감정에 극한 분노는 없다. 뭐랄까, 본업에 충실하지 않아 한심해 보이지만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애정 어린 느낌이 다분하다.


이는 어쩌면 오늘날 애묘인들이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려의 대문인 이규보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냥줍을 하고 그렇게 낭줍 시까지 남긴 애묘인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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